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벌어진 실제 철수 작전(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입니다. 약 40만 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군에 의해 해안에 고립되게 되고, 그런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민간인과 군이 총동원된 대규모 탈출작전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거대한 실제 역사적 사건을 화려하거나 거창한 서사가 아닌, 오직 세 가지의 시공간에 집중해 관객이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3가지 시점과 시간 구조
- 육지: 1주일 – 연합군 병사들이 해안에서 본국의 구조를 기다리는 긴 시간
- 바다: 1일 – 민간인 선장이 소형 보트를 타고 연합군들을 구조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하는 여정
- 하늘: 1시간 – 영국 공군이 독일 폭격기를 요격하는 작전을 표현
영화 속 이 세 가지 시점은 서로 다른 시간의 길이를 보여주지만, 편집을 통해 서서히 하나의 사건으로 융화되며 영화는 절정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실험 – ‘감상’이 아닌 ‘체험’
놀란은 전쟁을 기존 다른 영화처럼 그저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느끼고 경험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사소한 감정적인 연출이나 과장된 대사 없이도 관객에게 엄청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조차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으며, 명확한 주인공이 없습니다. 또한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도 없으며, 인물의 영웅적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한 인물에게 집중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특정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보다는, 전쟁이라는 그 상황 자체에 몰입하게 되며, 이 거대한 재난 속에서 무력한 개인의 시점을 화면을 통해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음악’이 아니라 ‘무기’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중 하나는 바로 긴장감을 주는 사운드입니다. 한스 짐머는 단순하게 흐름상 흐르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심장 박동과도 같은 긴박한 사운드 구성으로 영화를 긴장감을 완성합니다.
Shepard Tone (셰퍼드 톤)
셰퍼드 톤은 끊임없이 상승하는 듯한 환청을 유도하는 음악 기법으로, 실제로는 변화가 없지만, ‘점점 다가오는 공포’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관객의 긴장감을 영화 내내 유지하게 만듦
총성, 비행기 엔진 소리, 파도 소리
배경음악이 아니라 현실과 구분 안 될 만큼의 리얼한 음향으로 ‘조용한 장면’조차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음향 효과를 주었습니다. IMAX로 관람 시, 진동과 함께 정말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으로 덩케르크는 청각적 공포 영화라고 불리게 했을 정도로 사운드에 신경을 썼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마술’
영화는 3가지 시점과 ‘동시다발적인 시간’을 편집으로 맞물리게 하여, 전혀 다른 속도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만나는 구조를 만듭니다. 바다에서 하루동안 항해하는 선장(마크 라이런스)의 장면은 육지에서 일주일 동안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병사들의 시간과 교차되며, 하늘에서 1시간 동안 벌어지는 전투 장면과도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이러한 편집은 감정변화의 리듬을 조절하며, 영화속의 클라이맥스를 놓치지 않게 설계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간의 퍼즐입니다.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1. 영웅이 없어도 좋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위대한 것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전쟁에서의 생존은 단순히 운과 타이밍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누군가는 용감하지 않았지만, 살아남았으며, 그리고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2. 평범한 사람들이 이끄는 ‘조용한 용기’
영화의 감동은 총을 쏘는 영웅이나, 적을 무찌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경쓰지 않았던 보트 하나, 비행기 한 대, 침착한 한 사람의 판단에서 모든 것이 비롯됩니다.
3. 시간, 공포, 무력함,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스펙터클한 싸움이 아닌, 무한한 ‘기다림’과 ‘무기력함’으로 가득한 일상임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공포는 바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다가옵니다.
덩케르크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상황 안에 나를 던져 넣는 생존 체험을 하게 해줍니다. 그 속에서 다가오는 공포를 관객은 느낄 수 있습니다.